신관근 지회장·우원기 명예자문위원장 등 헌화·묵념… 6·25전쟁 참전 부자(父子) 장군에 감사의 뜻 기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서울특별시지부 광진구지회(지회장 신관근, 명예자문위원장 우원기)는 9월 30일 광진구 워커힐호텔 언덕에 자리한 월턴 워커 장군 기념비 앞에서 '월턴 워커 장군 추모행사'를 거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헌화, 고인에 대한 경례와 묵념, 고인의 약력 및 공적 소개, 폐식사 순으로 진행됐다. 헌화는 신관근 지회장과 자문위원장, 우원기 명예자문위원장이 맡았으며, 참석자들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켜낸 워커 장군의 희생과 공헌을 되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월턴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장군은 1889년 12월 3일 미국 텍사스주 벨턴에서 태어나 1912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패튼 장군이 이끈 제3군 예하 제20군단장으로 유럽 전선에서 활약하며 연합군 승리에 기여했다.

1948년 일본에서 미 제8군 사령관에 부임한 그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 한국에 파병돼 유엔군 지상군을 지휘했다. 북한군의 거센 공세로 전선이 남쪽으로 밀려나자 워커 장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장병들에게 "버티지 못하면 죽어라(Stand or Die)"라는 결연한 명령을 내렸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부산까지 위태로워지고 인천상륙작전 역시 불가능해지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워커 장군이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토대가 됐고, 이는 9·28 서울 수복과 10월 1일 38선 돌파로 이어지며 6·25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다시 치열해지던 1950년 12월 23일, 워커 장군은 전선 시찰을 위해 이동하던 중 지금의 서울 도봉구 도봉동 인근에서 국군 트럭과 지프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순직했다. 그의 유해는 미국으로 운구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며, 사후 대장으로 추서 진급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워커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따 아차산 자락에 워커힐을 조성했다. 워커힐이라는 이름에는 '워커 장군을 추모하는 언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1987년에는 이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현재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고 있다. 대구의 주한미군 기지 '캠프 워커' 역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워커 장군의 헌신은 대를 이어 이어졌다. 외아들 샘 워커(Sam S. Walker) 역시 6·25전쟁에 대위로 참전해 소총중대장으로 낙동강 방어전투와 38선 돌파 등에서 싸웠으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그는 1977년 52세의 나이로 당시 미 육군 최연소 대장에 올랐고, 워커 부자는 미 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대장 계급에 오른 사례로 남았다. 샘 워커 장군은 2015년 8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광진구지회 관계자는 "월턴 워커 장군과 샘 워커 장군 부자는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국가적 은인"이라며 "지역 내에 자리한 워커 장군 기념비를 매년 찾아 그 뜻을 기리고, 호국보훈의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